• 최종편집 2020-06-02(화)

5·18 양심선언 軍수사관의 고통…"5월은 인고의 시간"

'505 보안부대' 수사관 허장환 인터뷰/1988년 "전두환 광주 왔다" 양심선언/작년 美정보요원 김용장과 재차 증언/"매년 5월이면 넋이 나가는 사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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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5.17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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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당시 보안사의 축소판으로 불린 광주 505 보안부대 수사관 출신 허장환(72)씨의 5월은 매년 돌아오는 인고의 시간이다. 그는 최근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해마다 오월이 오면 넋이 나간 사람이 된다."

허씨는 1988년 양심선언을 통해 당시 대통령이던 전두환이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 방문했다고 증언한 인물이다. 양심선언 후 갖은 회유와 협박에 시달리며 몸을 숨기고 살다가 지난해 미국 정보요원 출신 김용장씨와 함께 다시 한 번 전두환의 사살명령을 증언하기도 했다.

◇"홍남순 변호사와의 짧은 대화,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505보안부대 수사관(전남북 비상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국보위 특수부 부장)으로 "입만 다물고 있으면 청와대 간다"는 승진길을 걷던 허씨의 마음에 균열이 생긴 것은 고(故) 홍남순(1912~2006) 변호사와의 짧은 대화였다. 홍 변호사는 민주화운동 1세대로 평생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인물이다.

허씨에 따르면 그 때 보안부대는 이른바 '수괴'를 정하기 위한 작업에 한창이었다. 홍 변호사는 당시 김성용 신부를 대신해 수괴로 지목됐다.

  "서울의 총수괴를 김대중으로 정하고, 광주 현지 수괴를 정해야됐지. 김 신부님은 검거가 안 된 사람이었어. 검거도 안 된 사람을 수괴라고 하면 난리가 날 거 아냐. 주먹구구식으로 홍 변호사님을 수괴로 정하게 된거야. 홍 변호사가 사무장이랑 아들을 시켜 동교동에서 자금을 받아서 사건을 꾸몄다고."

이같은 시나리오를 짜서 작성한 진술서와 함께 홍 변호사를 검찰에 송치했는데, 곧 홍 변호사의 신병은 재차 보안부대로 인계됐다. 당시 담당 검사가 이 내용을 보고 "도저히 기소를 못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허씨는 돌아온 홍 변호사 설득에 나서게 됐다. 그는 홍 변호사와의 만남을 "내 인생을 바꾼 순간"으로 기억했다.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몰골을 보면서 잠깐 대화를 했는데, 그 짧은 대화에서도 홍 변호사의 인생 철학과 이념, 사상이 보였어. 번뇌하게 됐지. 아, 내가 잘못살고 있구나. 잠을 자면서도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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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민주화운동 당시 505보안부대 수사관(전남북 비상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국보위 특수부 부장)으로 활동했던 허장환씨가 지난해 5월15일 오후 광주 서구 국군통합병원 옛터에서 5·18 희생자 시신이 소각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병원 보일러실 소각장을 가리키고 있다.

작은 균열은 곧 커졌다. 허씨는 "모든 일을 회의적으로,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됐다"고 했다. "어떻게 말하면 마취가 돼 있는 상태였는데 다른 시각으로 보니까 모든게 적나라하게 보이기 시작했어. 이게 전부 시나리오고, 조작이라는 게."

진압 작전에 속속 반기를 드러내던 그는 5·18 민주화운동 진압 직후 출근길에 보안부대 지하실로 끌려가게 된다. 허씨는 "나라 전체가 숨죽이고 있던 때 였다"고 했다. 일주일 간 고문을 당한 그는 금품 수뢰를 사유로 결국 강제 전역을 당한다.

◇아들의 질문…1988년 양심선언, 2번의 기자회견

1988년 이른바 '광주청문회'가 열리기 전의 일이다. 허씨는 전두환을 비롯한 9명으로 묶여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고발을 당했다. 이 사건으로 뿌려진 호외를 등교길에 본 허씨의 아들이 할 말이 있다며 그와 함께 인근 학교 교정을 걸었다.

"아들이 나한테 그 호외를 내보이면서 물었어. 역사적인 경위가 어떻게 되느냐고. 아버지가 지금 당장 답을 안 하셔도 좋으니,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해서 나한테 알려달라고."

보안사에서 소개해 준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앞서 강제전역 이후 전북 진안에서 숨어 지내던 그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써 둔 원고가 중앙정보부에 유출돼 또 한번 고문길을 걸었다. 영장도 없이 밤중에 진안에서 서울까지 끌려가 19일간 전기고문까지 당했다.

"나를 회유한다고 어느 자리에 취직을 시켜줬는데, 밀가루에 수제비만 먹고 살다가 취직해서 살고 있자니 그 자리를 버리기가 아깝더라고. 내 인생이 또 한 번 끝나게 생겼는데. 고민을 많이 하다가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정의롭게 사실을 밝혀야겠다고 생각했지."

허씨는 1988년 12월 평민당사에서 양심선언을 통해 계엄군의 만행을 증언했다. 보안사 요원들이 평민당사를 에워싼 것은 약 40여분 만이다. 허씨는 "우리집 뿐 아니라 처가집까지 전부 수색하고 잡으려 들었다"며 "김해를 거쳐 일본으로 몸을 피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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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민주화운동 당시 505보안부대 수사관(전남북 비상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국보위 특수부 부장)으로 활동했던 허장환씨가 지난해 5월15일 오전 505보안부대 옛터에서 계엄군의 만행을 증언했다.계엄군이 민주인사와 시민을 잔혹하게 고문한 505보안부대 지하실 모습.
"보안사는 집요하게 내 행적을 추적하고, 동향을 감시하고. 난 세상과 완전히 연을 끊고 살았지. 그러니까 내가 얘기한 것을 우습게 편집을 하더라고. 믿지를 않아요."

지난해 미 육군 군사정보관을 지낸 김용장씨와 함께 재차 증언에 나선 것도 이같은 이유다. 허씨는 지난해 5월 김씨와 함께 한 기자회견에서 전두환이 정권찬탈용으로 광주진압을 기획해 학살을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또 1980년 5월21일 광주를 찾은 전두환이 사살을 명령했다고도 했다.

"내 말을 입증해 달라, 당신이 가진 내용을 증언해 달라. 내 말과 당신의 말로 교차 사실확인을 하자고. 그런데 이젠 김용장이 가짜라고 하더라. 사건 자체를 우습게 희석해 버리고. 사람들은 사실 5·18의 진실이 밝혀지길 바라지 않는 것 같아."

◇밝혀지지 않는 진실…여전한 트라우마

일본으로 몸을 피했던 허씨가 강원도 화천의 산골에 정착한지도 수십년째다. 그해 겨울, 귀신의 울음소리를 내는 바람이 불었다. 이사온 첫날 밤 초가집에 불이 나 비닐 천막을 치고 석유 난로 하나로 겨울을 났다. 그때를 기억하면 그냥 다 잊고 싶은 마음 뿐이다.

"5월만 되면 괜히 일이 손에 안 잡혀. 누구한테 쫓기는 것 같고. 꽃이 피고 식물이 자라는 것,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씨앗은 인고의 세월을 견딘다. 내 마음도 그래."

그럼에도 허씨는 개인적으로 5월의 광주를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역사는 기록하는 사람의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지금까지의 항쟁사는 구전의 역사를 짜깁기 해 둔 것에 불과해. 다시 바른 역사를 올려 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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